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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24시 2007.6.1] 국내살사 초창기를 듣다 - 현필환

깐델라 소식

by 깐델라 2007. 6. 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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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에 입문한 것은 1998년 

현필환씨가 살사를 배우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로 ‘살사를 배우는 모임’에 가입하면서 부터다. 그 당시 강사는 엘리엇&혜선. 당대 국내 인스트럭터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당시엔 친목 모임이라 특별한 모임명이 없었어요. 게다가 살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이벤트성이 강했답니다.” 

어쨌든 엘리엇&혜선 커플에게 살사를 배운 현필환씨는 이후 같은 모임에서 매직킴에게 살사 강습을 들었다. 이때만 해도 살사는 그에게 단순히 ‘즐기는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좀 더 본격적으로 살사에 달려들게 된 것은 98년 겨울부터였다. 당시 애인이었던 최은영씨(현재 부인이자 깐델라 댄스스튜디오 부원장)와 함께 엘리엇&혜선 커플에게 개인 레슨을 받게 되면서였다. “개인 레슨을 받은 이유는 순전히 좀 더 살사를 잘 추는 싶은 욕심 때문이었죠.” 하지만 당시엔 수강료만 낸다고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인스트럭터는 적고 개인 레슨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은 넘쳐났기 때문에, 오디션에 통과하고 나서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필환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말했다. “당시에는 삼성SDS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살사가 본업이 되리라곤 전혀 상상치 못했답니다. 살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살사를 본격적으로 배운 계기가 개인 레슨이었다면, 진지해진 것은 사부인 엘리엇&혜선이 ‘라틴 리듬 프로덕션’이란 댄스 컴퍼니를 창립하면서 였다. 당시 초기 이사진으로 엘리엇, 혜선, 최은영, 청수, 현주, 일레인, 현필환씨 이렇게 일곱 명이 참가하였다. 때마침 말만이 문을 열면서 공연과 강습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살사는 그에게 단순히 ‘ 배우는 것’ 이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소피텔 엠배서더 호텔에서 ‘제 1회 코리아 살사 챔피언십’을 라틴리듬 프로덕션 이름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참고로 1위는 살사홍&성수진(인스트럭터 해병의 친누나) 커플이, 2위는 머리띠&하나비 커플이 차지했다. 

2000년 당시 서울에 살사바는 고작 세 개 수준 

말만이 오픈한 것은 1999년 겨울. 그전까진 홍대 마콘도와 이태원의 문나이트가 유명했다. 당시에는 ‘외국인이 반, 국내인이 반’일 정도로 살사를 추는 인구가 적었다. 당시 그 살사클럽에 있던 이들이 살사인의 전부였으므로 200여명 안팎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지금처럼 동호회가 없었기 때문에 살사를 즐기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그리고 댄서로 각 층이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 PC통신이 생기면서 천리안 빠소, 유니텔 러브살사(LS) 등이 만들어져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 군데 밖에 되지 않는 살사클럽에서 서로 얼굴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알아보고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당시에 인스트럭터로서는 엘리엇&혜선, 매직킴, 제임스가 가장 유명했다. 그 이후로 현필환과 최은영, 하청수&박현주, 일레인, 살사홍, 하나비 등이 활약했다. 

2003년 마침내 온투의 본고장 뉴욕을 가다! 

2000년 초 엘리엇&혜선 커플이 외국으로 출국하자, 현필환씨는 마땅히 배울 만한 선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프리 스핀’이란 공연팀을 만들었다. 당시 그곳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댄서로는 임수길, 오정은, 스핀 등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2001년 LA ‘웨스트 살사 콩그레스’에 참석했으며, 여기서 바스케즈 형제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2001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을 국내로 초청해 워크샵을 갖게 된다. 2001년엔 프란시스코와 모니카만 왔지만, 2002년엔 라몬 모랄즈와 쟈니 바스케스까지 합세해 무려 네 명이나 오게 되었고, 이들은 약 한 달간 현필환씨의 집에서 묶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에게서 살사를 맘껏 배우게 되었다. 

당시에는 LA 스타일이 국내를 강타하고 있었고, LA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팀으로는 로스 룸베로스와 살사 브라바가 가장 유명했다. 현필환씨의 열정과 노력을 지켜본 바스케즈 형제는 그에게 ‘K 룸베로스’를 만들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되지 않아서 팀을 해체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라고. 

대신 현필환씨는 오랜 살사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토양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전문 살사학원을 만들게 된다. 바로 2003년 3월 문을 연 ‘깐델라 댄스스튜디오’였다. 그해 5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마침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여기에는 그에게 살사를 가르쳤던 프란시스코의 제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님이 두 번째로 한국에 오셨을 때, 꼭 뉴욕에 가서 에디 또레스와 산토리코에게 배워보라고 하셨거든요. 게다가 마침 일본에서 하는 살사 행사에 갔다가 프랭키 마르티네즈가 소셜을 추는 것을 보게 되었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리고 뉴욕에 가기 전 살사 연수차 프란시스코 바스케스의 초청으로 이태리 밀라노에 가게 된 그는 거기에서 뉴욕 댄서들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사표를 던진 그는 부인인 최은영씨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산토리코와 데스카리나 라티나에서 훈련을 받고, 에디 또레스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간 김에 놓칠 수 있나요? 프랭키와 후안 마토스에게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뉴욕 스타일과 현필환씨가 인연을 맺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엘리엇&혜선 커플이 외국으로 나간 후, 당시 미군에 있던 안토니 플로레에게 살사를 5개월 정도 배웠는데, 그는 에디 또레스에게 사사를 받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두달 동안 미국에 체류하며 뉴욕 스타일을 제대로 배우고 왔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선 가르칠 수도 출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LA 스타일이 국내 살사계의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깐델라 댄스스튜디오에서 뉴욕 스타일로 강습이 바뀐 것은 2005년 가을부터 였으니 그에겐 나름대로 답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가 치룬 대외적인 행사들 

2003년 뉴욕에 다녀와서 그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당시엔 전문 댄스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살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다. “예를 들면 살사를 춘지 1년 이상 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중급’이란 이름을 붙이고 1주일에 한번씩 수업을 진행하는 특강 형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지금보단 강사입장에서 쉬웠죠. 하지만 댄스스튜디오를 열자 일주일에 두 세번 이상 와서 수업 듣는 이들이 대부분있었기 때문에, 좀 더 체계있게 가르치기 위해 제가 많은 준비를 해야만 했답니다.” 

2005년쯤 되자 그는 선생님도 보고 싶고, 교류를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2004년 12월 엘루이 호텔에서 밀튼 코버와 마릭사 발렌틴, 프란시스코&모니카를 초청해서 파티를 갖게 된다. 

2005년엔 ‘파이어 오브 라틴’을 개최하였다. “국내 자체 기획으로 ‘콩그레스’ 같은 행사를 갖고 싶었습니다. 외국 프로모터의 도움이나 진행 없이 말이죠.” 당시 초청된 댄서로는 로스 룸베로스, 살사 브라바, 뉴욕의 산토리코 팀이었다. 국내에서도 몇몇 댄스 컴퍼니를 빼놓고는 대부분 참석했다. “혼자 진행해서 힘들었고 손해도 많이 보았습니다. 파이어 오브 라틴‘은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지만, 시대 상황도 맞추고 좀 더 발전된 형태로 하고 싶어서 고민 중입니다. 국내에서 이런 큰 규모의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아쉬운 점은 마치 '조각을 맞춘 듯한’ 진행이었습니다. 서로 수준이 다른 여러 개의 팀이 각기 공연을 준비하고, 그런 공연을 보는 관객은 쉽게 질리기 마련. 결국엔 몇몇 공연을 제외하곤 프리댄스 타임에 맞춰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 그런 것에서 탈피하고자 현재 많은 고민중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일단 강사들을 더욱 훈련시키고, 일반인들도 높은 레벨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파이어 오브 라틴’ 같은 행사도 해볼 계획. 또한 ‘쇼케이스’도 가질 계획이라고. 동호회가 발표회를 가진다면 깐델라 댄스스튜디오에선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인다. 밸리와 살사를 합쳐 열 개 정도의 작품이 올라가는데,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내년엔 살사인들 앞에서는 공연행사도 가질 계획이다. 또한 올해 10월에 열리는 뜻깊은 행사인 ‘살사 10주년 파티’를 매직킴, 일레인, 살사홍, 그리고 아내 최은영씨와 함께 개최할 계획이다. 

굴곡이 심했던 국내 살사 

국내 살사 초창기를 지배했던 것은 콜롬비아 스타일. “만약 당시 살사 추는 모습을 지금 본다면 ‘저게 살사야?’라고 반문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엔 다 그렇게 췄답니다.” 그러다가 엘리엇&헤선 커플이 LA 스타일을 국내에 보급하기 시작했고, 프란시스코, 쟈니 바스케즈가 국내에 초청 워크샵을 가지면서 확실해졌다. “뉴욕 스타일이 국내에 퍼지게 되는 데는 산토리코와 프랭키 마르티네즈의 영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엔 외국댄서의 내한행사나, 어렵게 구한 짧은 동영상 클립이나, 외국에서 구매한 DVD 등을 보면서 살사 문화를 체험했다. 2002년 ‘웨스트 코스트 살사 콩그레스’에서 산토리코가 공연을 선보였는데, 스피드 있는 턴과 우아한 동작 때문에 국내 살사인들에게 많은 어필을 했다. 그리고 2003년에 프랭키 마르티네즈가 같은 행사에서 샤인만 가지고 공연을 했는데, 그것 역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현재 국내에선 온원을 많이 추지만, 뉴욕 스타일이 많이 접목된 형태이며, 아프로-쿠반 스타일이 접목된 무브먼트가 많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댄서와 인스트럭터 그리고 살사 인구가 많이 늘었다. 살사가 국내에 들어온 지 10년임을 감안하면 많은 변화를 겪은 듯 싶다. 국내에 관련 행사도 많아졌고, 그것들이 살사를 풍성하게 했다. 현필환씨의 소망은 깐델라도 거기에 일조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심보선(주작) 기자 magniten@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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